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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한국에 대해서...
 작성자 : 관리자 2011.03.16 11:08:17, 조회 1,535 

킵차크한국 (Kipchak Khanate)

남러시아에 성립한 몽골왕조(12431502)로서 금장한국(金帳汗國)이라고도 한다. 징기즈칸의 장자 주치[求赤, 拙赤]는 이르티시강() 이서(以西)의 스텝을 영지로 받았으나, 주치의 사후 그의 차남 바투는 몽골 서정군의 총수가 되어 러시아 및 동유럽 각지를 석권함과 동시에 남러시아를 확실히 장악하여 킵차크한국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신도(新都) 사라이가 선 볼가강의 하류지방은 유라시아의 스텝을 경유하는 실크로드와 북방으로부터의 모피로(毛皮路)가 교차되는 요충을 점하여 오랫동안 투르크계 하자르족이 활약하는 무대가 되어 있었다.

몽골군이 출현했을 때에는 같은 투르크계 킵차크족이 북쪽의 불가르, 서쪽의 슬라브 및 동로마, 동남의 이슬람권과의 사이의 중계무역에 의하여 번영하였다. 또 몽골의 지배자가 급속히 투르크화, 이슬람화한 현상도 같은 사실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나라는 그 중계적 입장을 더욱 강화하였으며 제4대의 베르케칸이 건설한 신()사라이는 구()사라이와 함께 국제시장으로서 크게 번창하였다. 그러나 제9대 우즈베크칸의 최성기 이후 14세기말부터 티무르군에게 유린되는 등 퇴색이 짙어져서 국토는 카잔, 크림, 아스트라한의 3한국으로 분열되고 그들이 대립·항쟁하는 가운데 멸망하였다.


크림한국 (Khanate of the Crimea)

크림반도(半島)를 중심으로 하여 성립된 몽골계 왕조(14301783)로서, 바투의 아우 토카티무르의 후예 하지 기레이가 킵차크한국으로부터 독립 건국하였다. 반도 남쪽 바그체 사라이에 수도를 정하여 북방 및 동방과 연락하는 상로(商路)인 흑해(黑海)로의 출구를 가로막고, 제노바인()의 식민지 카파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했다. 2대 멘그리기레이 때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속국이 되었으나 이후 2세기에 걸쳐 존속하였다. 1738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멸망하였다.


카잔한국 (Kazan Khanate)

볼가강() 중류의 카마강변에 위치한 카잔시()를 수도로 했던 투르크족()의 국가(14451552)였다. 킵차크한국 쿠춤 무한마드(재위 1423∼1459)의 시대에 그 일족인 우르그 무한마드와 그의 아들 마프무데크가 도망을 쳐서 카잔에 자리잡고 독립왕국을 창건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 지방의 원주민은 추바시인(), 몰도바인, 체레미스인 등으로서 마프무데크는 이 지방에 투르크 이슬람정권을 세우고 이슬람 사원을 건설하였다. 카잔한국은 처음에 모스크바 대공국(大公國)을 공격하였으나 점차로 반격을 받아 모스크바의 이반 4세는 15만의 군대로써 카잔시를 공격하고 1552년 10월 2 이를 함락시켰다. 그 후 5년이 지나 카잔한국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남러시아에 있어서의 몽골 세력은 소멸되었다. 현재 러시아연방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 주민의 대부분은 카잔한국 주민의 후예들이다.


아스트라한한국

1466년 킵자크한국의 말기에 카심한이 세운 국가였다. 수도 아스트라한을 중심으로 볼가강(), 우랄강 중하류의 초원지대를 영유하고 주로 수렵, 어로, 목축에 종사하였다. 지리적 위치로 인해 동서의 통과무역이 번창하고 킵차크한국의 구도(舊都) 사라이의 상업적 기능을 계승해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노얀, 베그 등의 귀족계급의 항쟁이 격심하였고, 대외적으로는 크림한국 및 노가이가() 사이에 끼어 정치적 간섭을 받아 왕권은 약체화하였다. 1554년 카잔한국을 멸망시킨 러시아의 이반 4세에게 1556년 멸망되었다.


노가이 (Nogay)

스타브로폴 민족의 하나로서, 러시아연방 다게스탄공화국의 카라차이체르케스주()에 산다. 조상은 포로베츠인()과 섞여 그 언어를 도입한 몽골종족이다. 언어는 알타이어족 터키어군(語群)의 킵착어파(語派)에 속한다. 기본적 생업은 목축이지만, 카라차이체르케스주에서는 농업을 경영한다. 수니파의 이슬람교를 믿는다



일한국

메소포타미아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친 광대한 지역을 통치했던 투르크계 몽골제국(1259-1336)으로서, 시조인 훌라구칸(Hulagu Khan, 旭烈兀汗, 욱열올한, 1218~1265, 재위12581265)은 징기즈칸의 막내아들인 툴루이의 셋째아들로서 몽케칸(헌종)의 아우이다. 일한이란 투르크어로 '나라의 왕'이라는 뜻이며, 훌라구왕조 군주의 칭호이다. 훌라구칸은 1253년 형 몽케칸의 지시로 (西)아시아로 원정(遠征)하여 공포의 암살단 조직원인 이스마일파()를 토멸하고, 1258년 바그다드를 공략하여 셀주크투르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압바스왕조의 칼리프 정권을 멸하였다.

750년 아랍계가 지배하는 우마이야왕조로부터 정권을 탈취한 압바스왕조는 지배층에 페르시아인을 비롯한 비아랍계 무슬림들을 대거 참여시키면서 아랍민족 우월주의는 퇴색되었고 그리고 무슬림 평등원칙이 확립되었다. 다마스쿠스에서 바그다드로 수도를 옮김으로써 정치, 군사, 문화, 경제의 중심지가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도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새로 건설된 바그다드는 세계 동서무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상업활동에 종사함으로써 신학자나 법학자 등 이슬람의 성직자층과 나란히 관리·상인·지주가 지배계급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5대 칼리프인 하룬 알라시드(재위 786809)와 그의 아들 알 마아문(재위 813~817) 시대가 압바스왕조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다음 칼리프인 알 무으타심(재위 833~842)이 어릴 때부터 군인으로 훈련 받은 맘루크라 부르던 투르크 노예 용병들을 궁성의 경호원으로 고용하면서 쇠락의 씨앗이 심어졌다. 이들은 지연적·혈연적 관계가 없었으므로 오직 칼리프에게만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다. 따라서 칼리프는 중앙정부에서의 고조된 아랍인과 페르시아인 간의 갈등을 드러내지 않고 파괴시킬 자신의 친위대로 이들을 고용하는 한편, 제국의 안전을 도모하는 고급 군사집단으로 이들을 훈련·성장시켰다. 그러나 맘루크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자각하게 되자 이들은 스스로 지배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결국 압바스왕조의 칼리프제는 861년부터 945년까지 맘루크에 의해 좌우되었으며, 동시에 제국 전역에서 정치세력화된 지방 토호나 지방으로 파견되었다가 세력을 확장한 맘루크정권 등이 반()독립화되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독립왕조는 파티마왕조(909~1171)였으며, 파타마왕조는 북아프리카 전역을 세력권 안에 넣었으며 시칠리아, 이집트, 시리아 등을 통치하게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중동은 서부의 파티마왕조와 동부의 압바스왕조 치하로 양분된 상황이었다. 당시 압바스왕조는 945년부터 페르시아계 시아파인 부와이흐왕조(945~1055)에 의해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당했으며, 칼리프는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칼리파제가 맘루크나 부와이흐 같은 이민족에 의해 좌우되면서도 완전히 붕괴되지 않은 것은 무슬림 수장으로서의 칼리파의 전통적 존엄성이 유지되어야만 아미르나 술탄들이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1세기 전반에 이르자 파티마왕조, 부와이흐왕조는 모두 쇠퇴했으며, 셀주크투르크가 1055년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부와이흐로부터 압바스왕조의 통치권을 넘겨받았다. 셀주크투르크(1038~1194)는 칼리프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대신 세속통치의 절대권력을 의미하는 술탄의 칭호를 사용했으며, 실질적으로 칼리프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였다. 이후 셀주크투르크조가 붕괴하고 13세기 초의 한 시기를 제외하고 칼리프는 종교상의 권위만을 유지하는 데 그쳤으며, 바그다드가 훌라구에게 점령당하면서 칼리프제()는 완전히 몰락하였다.

훌라구는 시리아를 정토하던 중 몽케칸의 부보(訃報)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점령지를 확보해야 했고, 또 둘째형 쿠빌라이와 동생 아리크부카 사이의 칸위() 다툼을 알고 귀환을 단념하고 1258년 일한국을 세웠다. 그는 몽골제국의 칸 종주권을 존중하며 우호관계를 유지하였지만, 킵차크한국 및 다른 2개 한국과는 영토문제 등으로 사이가 나빠서 자주 싸웠다.

일한국은 역대로 타브리즈를 수도로 하였다. 초기의 군주는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보호하여 이슬람교국인 이집트의 맘루크왕조와 싸우고, 로마 교황 및 프랑스와는 외교관계를 맺었다. 7대 가잔칸은 일한국 중흥의 영주(英主)로서 이슬람교를 보호하여 국교로 삼았고, 중앙집권정치를 확립하였으며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이슬람사원을 세웠으나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국가와도 우호관계를 맺었다.

8대 올자이투칸도 유럽과 관계를 맺고 맘루크왕조를 공격하였으며, 한편 종실(宗室)인 원()왕조와 대하여 동족인 http://100.naver.com/100.nhn?docid=144344 " target=_blank>차가타한국과 대립하였다. 9대 아부사이드칸(재위 1317~1334) 때부터 일한국은 쇠퇴하였으며 귀족들이 왕권을 둘러싸고 항쟁하여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아부사이드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아르파칸(재위 1335-1336년) 시기에 이르러 일한국은 여러 개의 소국으로 분열되었다. 일한국을 계승한 소국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하는 잘라이리조(Jalayirids, 1339~1432)였으며, 그 외에도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하는 추판조(Chupanids, 1337~1357년) 등이 비교적 큰 세력을 갖고 있었다. 추판조는 1357, 잘라이리조와의 전쟁에서 패망했으며, 잘라이리조는 서(西)투르키스탄에서 일어난 http://100.naver.com/100.nhn?docid=156739 " target=_blank>의 흑양왕조(터키어는 Kara Koyunlu)로부터 공격을 받아 와해되었다. 그러나 1405년 티무르가 사망한 뒤 다시 왕조를 일으켜 1432년까지 존속했다.


차가타이한국 (Chaghatai Khanate)

징기즈칸의 둘째 아들 차가타이가 중앙아시아에 건립한 몽골왕국(12271360)이다. 차가타이는 아버지에게서 4천명의 군대를 얻고, 한국의 영지 비시발리크에서 사마르칸트에 이르는 톈산[天山]의 계곡지대를 받아가지고 본영(本營)을 일리 분지의 알말리크에 두었다. 한국은 처음에는 오고타이, 몽케, 구유크 , ()칸의 통제를 받았으나 1260년 쿠빌라이가 원()나라를 세우면서 독립을 꾀하였다. 그러나 오고타이의 손자 하이두는 쿠빌라이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결과 차가타이한국은 하이두의 지배에 들어갔다.

1301년 하이두가 죽자 차가타이가()의 두와칸은 원나라와 화해하여 한국의 독립과 통일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두와칸의 여러 아들이 서로 분립하여 권력을 다투다가 마침내는 톈산 방면에 거점을 둔 동부 한가(汗家)와 서부 투르키스탄에 웅거한 서부 한가의 동서로 분열하였다. 서부에서는 투르크화한 한국의 귀족들(아미르)이 권력을 다투자, 그 중에서 티무르가 나타나서 서부 한가를 평정하고 1369년에 티무르제국을 건립하였다. 차가타이 한국은 조직화된 국가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정주지대(定住地帶)의 통치를 하였는데, 특히 징세(徵稅)는 토착민인 이슬람교도의 대관(代官)이 행하였다. 서부 한가는 14세기 초부터 투르크 이슬람화하였으나, 에센 부카를 시조로 하는 동부 한가는 모구리스탄한국으로 불리며 몽골의 유목적 생활전통을 유지하기도 하였는데, 16세기초까지 톈산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티무르왕조 (Timurids)

티무르와 그의 자손이 지배하였던 왕조(13691508)로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메소포타미아와 코카서스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통치했다. 창시자 티무르는 몽골제국 왕실의 후예로, 1369년부터 중앙아시아의 트랜스옥사니아와 호라산 전역을 점령하기 시작했으며, 1366년에는 사마르칸드를, 1369년에는 발흐(Balkh)를 점령하고 점령지를 통합했다. 그는 사마르칸드에 도읍한 뒤, 몽골계의 차카타이부족의 이름을 걸고 통치를 시작했으며, 1380년부터는 서방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1389년에 이르러 티무르는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으며, 1401년에는 바그다드를 함락시켰다.

이후 티무르는 동쪽의 명나라를 정벌하고자 원정을 떠났으나 1405년 병사했으며, 그의 손자 칼릴(Khalil, 재위 1405~1409년)이 술탄의 칭호를 이어 받았다. 그러나 술탄 칼릴은 폭정을 펴 1409년 폐위되고, 티무르의 제4남 샤루크(沙哈魯, Shahrukh, 재위 1409~1447년)가 즉위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서부 헤라트(Heart)를 도읍으로 삼았다. 그의 38년간의 치세(治世)는 티무르왕조의 전성시대를 이루었으나 제6대 술탄 아부 사이드(Abu Sa’id Gurgan, 재위 1451~1469년)가 사망한 뒤 헤라트와 사마르칸드를 비롯하여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사마르칸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술탄 아부 사이드의 후손들이 계속 통치했으며, 술탄 알리 미르자(Ali Mirza, 재위 1495~1500년)를 마지막으로 우즈베크족에게 멸망하였다. 한편 헤라트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샤루크의 손자인 야디가 무하마드(Yadigar Muhammad, 재위 1469~1470년)가 술탄위에 올라 통치하기 시작했으나, 1470 9월 호라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티무르의 증손자 후세인 베이카라(Husayn Bayqarah, 재위 1470~1506년)와의 분쟁에서 패하며 왕위를 넘겨주게 되었다.

술탄 후세인은 재위 초창기에는 티무르왕조 전성기 때의 영토를 거의 회복하는 듯했으나, 1500년에 사마르칸드의 티무르왕조가 우즈베크에게 멸망한 뒤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미 강성해진 우즈베크족은 헤라트의 티무르왕조의 영토를 위협하기 시작했으며, 술탄 후세인의 근거지였던 쿠라산까지 점령당할 위기에 놓여있었다. 술탄 후세인은 이를 막아보고자 했으나 1506년 사망했으며, 그 후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싼 두 아들인 바디 후세인(Badi Husain)과 무자파르 후세인(Muzaffar Husain) 간의 갈등으로 내분이 일어났다. 우즈베크족의 지도자 무하마드 샤이바니(Muhammad Shaybani)가 이를 기회로 1507년에 헤라트를 점령한 뒤 티무르왕조의 후손들을 각지로 유배시킴으로서 왕조가 멸망했다.

티무르왕조는 비록 몽골과 투르크계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나, 이슬람을 받아들인 이후로는 페르시아와 아랍의 문화를 흡수하여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지배계층은 고도로 발달한 페르시아의 미술과 문학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장려했으며, 시문학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티무르왕조 통치기에 가장 유명한 시인이었던 누르 알-딘 자미(Nur al-Din Jami, 1414~1492년)는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페르시아 시문학의 대가로 평가 받고 있다. 본래 티무르왕조 초기에는 투르크어, 차가타이어 등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페르시아 문학이 발전하면서 점차 페르시아어의 비중이 증가했다. 그러나 술탄 후세인 시기에 들어서면 왕조 차원에서 투르크 전통을 지키고자 투르크어 문학을 장려하기도 했다. 또한 티무르왕조는 페르시아 화풍의 세밀화를 비롯한 회화, 건축, 천문학 등의 발전에도 기여했으며, 술탄 중 한 명인 울룩 베그(Olog Beg)는 위대한 천문학자였다.


오고타이한국

징기즈칸의 셋째 아들 오고타이를 시조로 하여 몽골제국의 일부를 이룬 오고타이가()의 국가(12181310)이다. 기즈칸은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나기에 앞서 미리 그 일대의 땅을 여러 아들에게 분봉(分封)했는데, 오고타이는 톈산북로[天山北路]의 에밀지방(현재의 중국령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북서부에 위치)으로부터 이르티시강 상류지방을 소령지(所領地)로 받았다. 오고타이칸(太宗)과 그의 아들 구유크칸(定宗)은 잇따라 몽골제국의 대칸[大汗]이 되어 수도인 카라코룸으로 옮겨갔으나, 남은 일족은 원래의 소령지를 계승하였다. 구유크칸이 죽은 뒤 몽골제국의 대칸 자리는 툴루이가()의 몽케칸(憲宗)과 그 자손이 차지하여 오고타이가는 권력을 잃고 불만이 컸다. 특히 오고타이의 손자 카이두[海都]는 툴루이가의 쿠빌라이칸(世祖)가 원조(元朝)의 대칸이 되자 이에 항거하여, 중앙아시아의 차가타이한국도 지배하고 1260년대부터 1301년까지 원나라와 싸웠다. 그러나 카이두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차바르[察八兒]는 차가타이한국의 두와칸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1310년 도망하여 원나라에 귀순했기 때문에, 오고타이한국은 멸망하였다. 이 나라는 1세기도 채우지 못한 단명(短命)의 유목국가로서 제도나 문화면으로는 볼 만한 것을 남기지 못하였다.


출처 : 석조건물 문화유산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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