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3일, 나는 몽골 헨티산맥을 끼고 흐르는 케룰렌강 상류의 한 분지에 가 있었다. 그곳에서 생활한 지 열흘을 채울 무렵 나는 실망과 회의감, 그리고 권태가 뒤섞여 무력감에 빠졌다. 분명히 내가 간절히 원해서 그곳에 갔지만 현실은 나의 낭만과 한참 거리가 멀었다. 나의 낭만이란 매일 늑대와 마주치고 밤이면 모닥불을 쬐며 늑대 무리의 합창을 듣는 것이었다.

내가 몽골에 간 이유는 보드카에 취한 채 말을 타거나 헨티산맥 정상에 올라 야호 소리를 외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오로지 야생 늑대를 보기 위해 라면으로 살 생각을 하고 몽골에 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과대망상에 불과했고 낭만은 객기였다. 내 집 책상에 앉아 수집한 자료와 귀동냥은 가장 쾌적한 여름 몽골에 관한 것이었고 긴 시간 예습을 했음에도 겨울에는 써먹을 게 없었다.

몽골의 낮 시간은 너무 짧았다. 아침 9시에 출발해도 오후 3시에는 숙소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해도 완전히 어두워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장독처럼 뚱뚱한 늑대사냥꾼 직짓 아저씨

나처럼 걸으며 동물을 찾는 사람에게 더욱 현실적인 괴로움은 추위라 할 수 있다. 온도계의 수치로 보면 소꼬리가 뚝 부러질 정도의 추위는 없었다. 따뜻한 날은 영하 10도 내외, 12월 중순까지 가장 추운 날도 영하 28도였으니까. 하지만 찬바람에 몇 시간씩 노출된 카메라는 먹통이 되기 일쑤여서 바로 앞의 여우를 보고도 카메라를 품속에서 꺼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심리적으로 더욱 힘든 건 까마귀와 까치, 독수리와 가축을 제외하면 움직이는 동물을 보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11월이면 우리나라 습지에는 겨울 철새로 떠들썩하다. 그러나 몽골엔 겨울 철새란 개념이 없다. 봄과 여름에 새끼를 친 새들은 이미 2월에 모두 남쪽으로 철수했기 때문이다. 추위와 허기가 누적되어 고통으로 변할 때 동물이 나타나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하루하루를 이어나갈 수 있으며, 그 맛에 동물을 찾아다닌다. 그것은 마치 마약과 같으며 중독성이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열흘이 다 되도록 발자국과 똥으로 연결된 과거의 행적만 좇아다녔던 것이다.

나름대로 중대한 결심을 할 때 말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인 사람의 습성이다. 철수할까 더 기다릴까를 망설이며 하루 이틀을 죽이고 있을 즈음 직짓 아저씨가 보따리를 풀었다. 우리(나와 자연다큐멘터리 제작자 강정호)는 몽곤모리트솜(우리로 치면 군 소재지) 부근의 사냥꾼 직짓 아저씨네 집에 머물고 있었다.

직짓 아저씨는 칠순을 갓 넘긴 불곰의 체구에 여우의 지능을 지닌 노인으로, 그 지역에선 꽤 이름난 사냥꾼이었다. 비록 한쪽 눈은 뿌옇고 기름이 가득 찬 배는 김장독 같지만 지금도 늑대 사냥을 한다. 11월 중순이 지나면서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사냥꾼들이 팀을 짜 직짓 아저씨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울러 동네 젊은이들도 몰이꾼으로 아르바이트 시즌을 맞아 분주해졌다.

늑대 사냥은 총잡이 5~6명에 몰이꾼이 10여 명 동원되며 직짓 아저씨가 사냥꾼 한 사람씩 목을 잡아준다. 그러나 대개는 실패하는데, 늑대 역시 그런 방법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3일 정도 머무르면 한 마리의 늑대를 잡을 수 있지만 보통 하루 이틀 사냥하기 때문에 흔한 여우만 잡아 가는 경우가 많다.

사냥팀들은 사냥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단합대회를 온 것 같다. 어떤 팀은 사냥에 앞서 작전회의를 하다가 술에 취해 다음날 그냥 가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늑대 사냥에 동참하면서 늑대가 좋아하는 곳과 겨울철 행동 습성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몽골인들이 늑대를 죽이는 이유는 먹기 위함이 아니다. 몽골에서 늑대는 보호동물은커녕 연중 누구나 사냥할 수 있는 해로운 동물로 규정되어 있다. 양을 비롯한 가축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게 그 이유다. 과거 총이 없던 시절, 그래서 간이 커질 대로 커진 늑대가 많았던 시절에는 무리를 지어 가축을 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늑대 수도 줄었고 인가 근처를 기웃거리는 경우도 드물다. 사람과 마주치면 제 명대로 못 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늑대가 죽였다는 말이나 소도 사실 늙거나 병들어 또는 굶어 죽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그 사체를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늑대 탓이라 말한다.

늑대는 몽골에선 아무나 사냥해도 되는 ‘해로운 동물’

과거 우리나라의 농부들도 잡초가 많은 논이나 밭을 보면 “누군지 농사 더럽게 짓네” 하며 혀를 찼다. 유목민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기르는 가축이 죽어 나뒹굴고 있는 걸 남이 보게 되면 창피해한다. 때문에 나 같은 외지인에게는 늑대가 죽인 것으로 설명하거나 우리집 가축이 아니라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젊은이는 솔직히 얘기하는 편이다. 그 가축이 왜 죽었는지를 말이다.

예전과 달리 늑대에 의한 가축의 피해가 미미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유목민의 입장에서는 늑대가 없으면 신경 쓸 일이 하나 더 줄어들기 때문에 최소한 현 수준(몽골 전체에 1만 마리=100평방km당 0.6마리)에서 증가하지 않도록 늑대 사냥을 계속하는 것이다.

늑대 사냥을 따라 다니는 것도 곧 식상해졌다. 살아 있는 동물을 찾아 혼자 헨티산맥을 헤매고 다녔다. 늘 그렇듯 혼자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하다. 친구는 그림자 하나면 족하다. 히말라야산맥이나 안데스산맥이 뇌리에 각인된 사람에게 헨티산맥은 그저 밋밋한 구릉으로 보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남쪽에 치우쳐 있는 헨티산맥의 최고봉 아스탈하이르항도 2,800m에 불과하다.

내가 머무는 직짓 아저씨네 집이 해발 1,700m의 고원이고 그 집에서 보이는 모든 꼭대기는 2,000m를 살짝 넘는 정도다. 산세는 부드럽고 완만해 여름이라면 가볍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겨울 헨티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지만 4월 전에는 녹지 않기 때문에 장소에 따라선 걷기가 힘들다. 처음 산을 봤을 때는 벌목이 극심하다고 생각했다. 남쪽과 동쪽 사면은 초지로, 북쪽과 서쪽 사면은 삼림으로 정확히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남쪽과 동쪽 사면은 증발량이 심해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해 그렇다고 한다.

북쪽과 서쪽에 빽빽한 나무는 주로 시베리아 낙엽송이 차지하며, 북쪽 고지의 습한 곳에는 시베리아 잣나무가 자란다. 시베리아 잣나무 숲에는 늦여름에서 가을까지 불곰과 멧돼지가 모이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불곰은 겨울잠에 들어갔고 멧돼지는 눈이 덜 쌓인 낮은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헨티산맥에는 늑대, 여우, 불곰, 스라소니, 주걱뿔사슴, 붉은사슴 등 중대형 동물이 많다. 문제는 과도한 사냥이다. 마을 주변에서는 사냥이 극심해, 이들을 보려면 마을을 완전히 벗어나 산맥 중심부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은 사람과 가축의 발자국이 전혀 없는 곳이라 한다.

우린 쉽게 포기했다. 사람과 말, 그리고 집(겔)을 사고 식량을 준비하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령도 생겼지만 무엇보다 동네 사람들이 내 얼굴을 기억했다는 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두워져 산을 내려오다가 길을 잃고 추위와 허기에 지쳤을 때 가장 가까운 겔에 가면 모두 날 알아보고 따뜻한 수테차(우유차)를 준다. 혼자 다니는 사람에게 가장 큰 재산이 바로 현지인에게 얼굴을 알리는 일이다. 그때의 인연으로 몽골에 들를 때면 항상 몽곤모리트에 가게 되었다. 시간이 축적되면서 나의 일기장에는 동물 이름도 계속 추가되고 있다.

/ 글·사진 최현명 야생동물작가·생태화가